패션
개요 : 패션(Fashion)은 특정한 시기에 유행하는 복식이나 두발의 일정한 형식을 일컫는 말이다. ‘옷맵시’, ‘유행’, '풍조', '양식' 등과 비슷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도 가지각색에 유행이란게 흔히 그렇듯 세월 따라 변하기 마련이라, 복고 패션이 다시 유행하는 패션이 되기도 한다. 바로가기
역사 : 제작시 고려할 점이 많은 바지보다 허리에 두르기만 하면 되는 치마의 등장이 인류사에서 먼저였다. 바지의 형태는 주로 승마를 많이 하는 유목민에게서 정주민으로 전파가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중국에는 바지가 도입된 계기가 조무령왕의 이른바 "호복기사(胡服騎射)" 즉 "북방 이민족처럼 바지를 입고 말을 타며 활을 쏜다."라는 사자성어의 사례를 통해 전해내려오며, 인도의 경우도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쿠샨 왕조에 의해 승마에 적합한 바지 및 단추 달린 외투가 도입되었다. 이러한 경우는 유럽에서도 다르지 않아서 스키타이 유목민들이 입던 바지가 켈트족에게로 전파된 것을 계기로 점차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공화정 시기까지는 켈트인들이 바지를 입는다고 상당히 괴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 이후 원로원에서 "이제 바지를 입은 원로원 의원이 나오는 거 아닌가?"하는 농담이 나온다던지 등등. 그러나 고대 말 전쟁수행능력의 중심이 보병에서 기병으로 이동한 것은 물론 바지를 입는 풍습이 있던 게르만족들이 서로마 제국 쇠퇴와 멸망을 계기로 유럽 각지에 정착하면서, 오늘날 유럽의 일상적인 복장이 되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토가를 입는 로마 원로원의 권위는 어느정도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나마도 중세 초 완전 몰락하고 대신 유럽에서 봉건 기사들이 소영주로 장원을 다스리는 봉건제가 자리잡으면서 바지가 더 빠른 속도로 보편화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는데, 고대 유럽이 기독교화하기 이전에는 남성의 나체 노출에 대해서 금기가 적었기 때문에 바지 대신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말을 타거나 의자에 앉는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지만, 신체 노출의 보다 엄격한 기독교가 보급되면서 게르만족의 대량 이주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동로마 제국 등에서도 아래에 바지를 먼저 입고 위에 전통적인 로마식 튜닉을 입는 식으로 복장이 변화하게 된다. 다만 바지의 기원 때문에 바지가 용감한 남성이 입는다는 고정관념은 바지가 본래 기마민족의 복장이었다는 사실이 일반에 잊혀진 오늘날에도 어느정도 남아있다.